비가 와서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 정오가 다 되어도 22도를 밑돌았다. 나는 어젯밤부터 계획해 뒀던 샤브샤브를 만들어 먹기로 결심했다. 귀찮아서 신라면이나 사다 끓여먹을까 했지만, 결국에는 샤브샤브를 만들어 먹기로 결심했다. 야오코에 가서 버섯 두 종류랑 숙주나물, 그리고 특별히 소고기도 샀다. 그리고 집에 남은 배추랑 두부를 썰어 가지런히 그릇에 정렬했다. 육수는 멸치액젓이랑 지난번 사다두고 안 쓴 닭고기 육수 분말 조금을 혼합했다. 그리고 소스는 내가 만든 맛이 잘 안 나는 간장소스랑 칼디에서 산 칠리소스. 날씨가 여름 답지 않게 살짝 살살해서 그런지 메뉴를 참 잘 골랐다. 야채를 잔뜩 먹어서 건강한 느낌도 좋았다. 마무리는 넓쩍 우동면으로, 탄수화물까지 먹고나니 제대로 잘 먹었구나 싶었다.
오늘은 마침 동네 마쯔리가 있는 날이었고, 일곱시 반부터는 하나비가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지난해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 하나비를 혼자 보러간 적이 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아이들과 그 가족들에 둘러쌓여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꿋꿋하게 혼자 피어오르는 불꽃들을 봤었다. 드디어 나도 일본생활에서 하나비에 참가했다는 어딘지 모를 뿌듯함과, 집단에 둘러 쌓여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외로움이 공존했다.
나는 구글에 이 마쯔리에 대해 검색했다. 의외로 잡다한 블로그 정보 뿐만이 아니라, 공식 홈페이지도 있었다. 하나비를 알리는 항목에는 자그마하게 "작은 비에는 결행, 우천시 중단"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혼자라도 가보자 하는 마음과 비나 펑펑 쏟아져서 중단이나 되어버려라 하는 마음이 둘 다 들었다. 사실 후자가 더 컸다.
얼마 전에 읽은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가 읽기도 쉽고 내용도 좋아서, 김영하 작가님의 책을 더 읽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 목록을 검색하다 빛의 제국이 세 정거장 차이의 역의 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하지만 큰 비는 아니었다. 새로운 풍경의 다른 마을길을 걸으며 도서관에 도착한 후 한참을 헤매이다 책을 찾았다. 아뿔싸, 한국어 원서 책이 아니라 일본어 번역판이었다. 나는 왜 당연하게 한국어 버전이라고 생각한 걸까. 책을 읽었지만 일본어라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핸드폰을 꺼내 비구름 레이더를 살피며 비가 얼마나 올 지 계속 체크했다. 그러던 중 마쯔리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기상악화로 하나비가 중단되었다는 문구가 있었다. 조금의 안심, 뭔지 모를 환희와 조금의 아쉬움.. 중단을 바라긴 했지만 막상 아쉽기도 하고, 혼자 외롭게 안 봐서 다행이기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봉오도리와 길게 늘어선 야타이를 봤다. 날도 선선하니 그제야 그 마쯔리를 좀 즐기는 기분이었다. 작년은 하나비, 올해는 봉오도리로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곳의 마쯔리를 즐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